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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여자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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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02. 폴스포츠_김희수님

결혼, 육아, 일.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희수 씨의 삶은 평범하게 반복되어 왔다.
49살에 폴스포츠를 알게 되기 전까지는. 아직 말갛게 어린 25살, 희수 씨는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결혼했다.
연년생으로 연달아 아이를 낳고 두 아이를 키우다 보니 8년이 훌쩍 지나갔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는 결혼 전 잠시 학원 수학 선생님을 했던 경력을 살려 과외 선생님이 되었다.
동네에서 한 명, 두 명. 알음알음 시작했던 과외 일이 어느덧 18년 차가 되었을 무렵, 희수 씨의 삶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사건이 생긴다.
폴스포츠 9년 차, 50대의 폴스포츠인 김희수 씨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비로소 시작된다.

처음 만난 세계,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운동이 있다니!

“아이들을 돌보면서 일도 하다 보니 세월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가더라고요.
눈떠서 식사 준비하고 수업하면서 하루 종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군대에 가고부터 무기력에 깊이 빠지게 됐어요.
더 이상 돌봐줘야 할 사람이 없다 보니 덜컥 시간이 많이 생겼는데 그 시간이 너무 막막하게 느껴졌어요.
하루 종일 소파에 늘어진 채로 시간만 보냈죠. 남편이 저를 ‘소파 공주’라고 부를 정도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 설거지를 하다가 팔을 다쳐서 깁스를 하게 됐어요. 과외를 모두 접고 재활에만 집중했어요.”

아이들과 일. 오랫동안 희수 씨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던 주춧돌들이 한순간에 삶에서 빠져나가자 그 자리에 처음으로 ‘운동’이라는 돌이 조금씩 굴러들어 오기 시작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유난스러우셔서 자전거 한 번 타본 적이 없었어요.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집 밖에도 못 나가게 해서 스케이트는커녕 그 흔한 수영장도 못 가봤어요.”

‘여자아이 몸에 상처가 나면 안 된다’는 것을 철칙으로 삼은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희수 씨는 운동을 접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
그런 희수 씨의 눈에 처음 들어온 운동이 바로 폴스포츠였다.

“좀 찾을 것이 있어서 ’인어공주’를 인터넷에 검색했다가 우연히 폴댄스의 ‘폴 피쉬(pole fish)’라는 동작을 발견하게 됐어요.
근데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인간이 이런 운동도 한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폴을 배울 수 있는 학원을 싹 뒤졌어요. 2014년도였는데 당시에 폴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전국에 몇 군데밖에 없었어요.
그러다 오픈한 지 딱 한 달 된 학원을 찾은 거예요. 전화를 계속 걸었어요. ‘제가 지금 49살인데 할 수 있나요?’ 정말 귀찮을 만큼 물어본 것 같아요.”

그렇게 전화를 걸어 같은 질문을 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무렵 드디어 희수 씨는 한 폴스튜디오에 등록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이 되었을 무렵에는 집에 폴을 설치하기에 이른다.

“일주일에 두 번씩 배우러 갔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그래서 남편에게 결혼기념일 선물로 집에 설치할 수 있는 폴을 받고 싶다고 했죠.
사실 남편은 제가 한 달 정도 좀 운동하다 그냥 그만둘 거라고 생각했대요. 그런데 6개월이 지나서는 아예 제가 폴 전문가반에 들어간 거죠.”

무기력한 소파 공주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우연히 굴러들어 온 폴스포츠란 돌은 희수 씨의 일상을 완전히 바꾸었다.
하도 오랫동안 집 안에만 있어서 휴대전화도 필요 없었다는 희수 씨는 폴스포츠를 하면서 휴대전화를 처음 장만했다.
혼자 지도 앱을 보며 대중교통을 타고 학원에 가고, 연습하는 모습을 촬영해서 다시 보며 복습하기 위한 용도다.

“부끄럽지만 원래는 제가 외출할 일이 있을 땐 남편이 늘 태워다 주곤 했어요. 그런데 혼자 다닐 수 있게 되니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리더라고요. 이제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지 않고도 어디든 갈 수 있잖아요.
혼자 학원 가서 폴스포츠 연습하고 나오는 길에
커피 한 잔 마시고 오기만 해도 너무 신나더라고요.”

폴스포츠는 김희수에게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있었던 이름 또한 다시 찾아주었다.

“누구 엄마, 누구 사모님. 결혼하고서는 제 이름으로 불린 적이 없었어요.
근데 학원에서는 동료들이 저한테 ‘희수 씨’라고 불러요.
저랑 20년 넘게 나이가 차이 나는 친구들도 저를 이름으로 부르는 거예요.
‘아, 나도 내 이름이 있었지.’ 그게 너무 새롭더라고요.
폴을 시작하고 저한테는 딸 같은 친구도 생기고 동료도 생겼어요.
인생이 이렇게도 바뀌네요.”

늦깎이 학생, 50대 희망의 아이콘으로

기초가 쌓이고 나니 희수 씨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자신감이 가득 솟아나던 무렵, 학원 원장 선생님의 권유 덕에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다.
바로 폴스포츠 대회 출전이었다.

“꼭 프로 선수가 아니더라도 나갈 수 있는 대회가 많더라고요.
폴을 시작한 지 1년이 안 된 아마추어부터 그 위 단계인 세미프로, 프로까지 여러 분야로 나갈 수가 있죠.
구경이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부산에서 열린 대회에 아마추어로 출전했어요. 그런데 시상하는데 제 이름이 불린 거예요.
18명 중에 6등까지 상을 주는데 제가 4등을 한 거죠. 상을 받고 처음엔 얼떨떨했지만, 덕분에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다음부터는 40세 이상부터 나갈 수 있는 마스터 부문에 집중적으로 출전하기 시작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한 일이 희수 씨의 삶에 계속해서 벌어졌다. 마스터 아마추어, 세미 프로, 프로까지. 대회마다 시상식에서 ‘김희수’라는 세 글자가 계속 호명되었다.
그렇게 차근차근 대회 경력을 쌓아 나가다 보니 주변에서 희수 씨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나이 50살이 넘은 사람이 폴스포츠를 하는 경우 자체가 워낙 흔치 않은데,
40대가 주를 이루는 마스터 부문 대회에서 50살이 넘은 사람이 상을 탔다니까 관심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성실해진다.
한 대회가 끝나고 나면 1년을 꼬박 다음 대회를 준비한다면서도 희수 씨에게는 지친 기색이 없다.

“순서와 기술을 짜고 연습하고, 그 동작을 더 잘하기 위한 연습을 하면서 꼬박 1년을 보내니까 대회에 나갔을 때는 긴장을 안 하게 되더라고요.
제 표정에서 그런 게 다 드러나나 봐요.
프로 대회에서 계속 1등을 했어요. 이제 대회는 그만 나가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 대회 때 제가 54살이었는데요.
54살 먹은 사람도 이 정도로 표현하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거든요.

희수 씨의 이야기가 방송에 소개되면서 4~50대 여성들로부터 연락을 받기 시작했다
. 희수 씨를 보며 용기를 얻어 폴스포츠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희수 씨는 소박한 꿈을 일기장에 적었다.

“동네마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실내 골프장처럼 폴스포츠 학원도 동네마다 생겨서 4~50대 여자들이 다 같이 운동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제가 폴을 2014년도에 시작해서 어느덧 9년이 됐는데 이제는 동네마다 학원이 하나씩 생기고 있어요. 학원마다 4~50대분들도 꽤 계시고요.

엄마, 남사스럽게 무슨 폴댄스야?

폴스포츠도 어느덧 대중화의 길을 걷고 있다. 해외는 물론 국내에도 많은 대회가 개최되면서 국제폴스포츠 협회 차원에서는 올림픽 종목 등록을 위한 노력 역시 한창 진행 중이다.
하지만 희수 씨가 폴을 시작한 후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폴스포츠, 그리고 의상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인 인식이다.

“저는 처음부터 별다른 편견이 없었어요. 이런 폴이 스트립 댄스에 이용된다는 사실도 전혀 몰랐고요. 폴을 배우러 갔을 때 다들 짧은 팬츠에 탱크탑을 입고 하길래 저도 당연히 그렇게 입은 거죠.
그런데 제가 폴스포츠를 한다고 하면 다들 하고많은 운동 중에 왜 그런 걸 하냐는 반응을 보여요.
남들 다하는 골프 같은 운동을 놔두고 왜 몸이 다 드러나는 옷을 입고 하냐는 거죠. 그런데 수영장 가면 수영복 입잖아요.
자전거 탈 때도 공기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쫙 달라붙는 레깅스를 입고요. 그런 것엔 아무도 뭐라고 안 거는데 왜 폴에다가는 그러는 걸까요?“

과학기술 연구자 임소연 박사는 사회가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는 시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로 폴웨어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인식을 꼽았다.

“남성이 하는 운동 중 씨름은 아예 상의를 입지 않아요.
레슬링도 온몸의 라인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꼭 붙는 의상을 입지만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아요.
그런데 왜 폴웨어에 대해서는 유독 이렇게 부정적인 인식이 많을까요? 그건 여성이 입기 때문이에요.
여성이 그 옷을 입고 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 옷을 입고 있는 ‘몸 자체’를 더 의식하는 거죠.

폴아트, 로우폴, 더블폴부터 힐을 신고 하는 이그조틱이라는 장르까지. 폴스포츠 안에도 각양각색의 각기 다른 종목이 있다.
그중 희수 씨가 중점적으로 파고든 것은 폴아트다.
유연성과 기술 수행의 정확도, 독창성까지 모두 평가받으며 각종 기술을 수행하기 위해선 피부 마찰이 필수적이고, 필연적으로 몸을 드러내는 옷을 입을 수밖에 없다.

“정말 고수라면 양 손의 힘만으로 버틸 수도 있겠죠. 또 기술 중에는 컨택 포인트가 필요하지 않은 기술도 몇 가지 있어요.
하지만 보통의 경우라면 대부분의 기술을 수행하면서 폴에서 버티기 위해서는 옆구리, 팔, 다리, 엉덩이 등 폴과 닿아서 몸을 지탱할 수 있는 여러 컨택 부위가 필요해요.
몸 전체를 감싸는 옷을 입고는 기술을 수행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 전에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일단 바로 바닥으로 떨어져서 부상을 입게 되죠.”

재밌어서 시작한 운동인데 어느새 희수 씨의 몸에는 자연스럽게 근육이 붙기 시작했다. 서민정 트레이너는 생존을 위한 근력 운동을 강조한다.

“30대 이후부터는 숨만 쉬어도 근육이 자연적으로 소실돼요. 근육의 기능은 미적인 것이 아니라 몸을 지탱해 주고 몸을 움직이게 하는 거잖아요.
몸을 움직인다는 것은 곧 살아있다는 거고요. 그래서 30대부터의 근육 운동은 생존에 가깝다고 봐야 해요.
나이가 들어서도 내 활동의 반경을 계속 확장해 나가고 싶다면 근육 운동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영원한 타자, 내 몸과 친해지기 위한 평생 운동

폴스포츠를 하면서 희수 씨는 나이의 경계를 자신의 삶에서 지운 것은 물론 자기 몸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아무리 뻣뻣한 사람도 계속해서 연습하다 보면 유연해질 수 있고, 나이가 많다고 해서 못 하는 운동은 없다는 것을 더 실감하게 됐어요.
운동을 하다 보니 내 햄스트링이 남들보다 유연하다는 것을 알게 돼서 거기에 맞춰 스플릿 동작을 열심히 연습했고요.
또 힘이 부족하긴 하지만 균형감각은 좋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밸런스를 이용한 동작을 배우기 시작했죠.”

임소연 박사는 내 몸을 인지하고 이해하는 과정으로서 평생 운동을 강조한다.

“우리는 보통 내 몸이 내 것으로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사실 내 몸은 우리가 평생 함께 살아야 하는 ‘타자’라고 생각해요.
내 몸이라 할 지라도 내 몸을 내가 완전히 예측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기 때문이죠.
내가 평생 함께 살아야 할 타자인 몸을 끊임없이 이해하도록 노력하게 되는 과정이 바로 운동이에요. 일상생활에서 내 몸을 의식적으로 인지하는 것은 쉽지 않아요. 운동을 하지 않는다면 갑자기 아프게 되는 등 정상 범주를 벗어날 때나 겨우 자신의 몸을 자각하게 되는데 운동을 하면 평소에 다양한 방식으로 내 몸을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희수 씨에게는 폴스포츠가 평생 운동이다. 시작할 때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안다. 자신이 이 운동을 앞으로도 계속해 나가게 될 것이란 것을.

“아마 혼자 하는 헬스를 했다면 정말 한 달 만에 그만두지 않았을까요.
나한테 맞는 운동을 운 좋 게 찾았기 때문에 이렇게 오래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폴스포츠는 제 몸보다도 제 정신력에 맞는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오늘 안되는 동작이 내일은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면 오늘 안되는 동작이 1년 뒤에 될지도 모른다는 도전 정신을 다지게 돼요. 내가 직접 내 몸에 잘 맞는 운동을 찾아보고, 나 스스로가 너무나 하고 싶어서 하는 운동이 나랑 평생 갈 수 있는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사람마다 다 다를거고, 저에게는 그게 폴이었던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