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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여자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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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01. 요가_이소영님

19세기의 버지니아 울프는 여자에게 일정한 돈, 자기만의 방, 생각을 표현할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21세기 버전으로 다시 말한다면 현대의 여성에게는 자신만의 숲과 나에게 맞는 운동이 되지 않을까?
여기 이것으로 자신의 삶을 새롭게 꾸려가는 이가 있다.
강원도 정선에서 '포레스트 요가'를 수련하고 가르치고 있는 이소영 씨는
10년이 넘던 커리어를 하나의 운동을 만난 것을 계기로 정리하게 되었다.

포레스트 요가, 평화롭게 호흡할 수 있는 나만의 숲을 만나다

"IT회사에서 브랜딩 디자이너로 일했는데 버려질 무언가를 계속해서 만들어 내야 한다는 사실이 힘들었어요.
대량으로 만들어지고 버려지는 반복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죠.
그런 고민을 하던 중에 우연히 요가를 만나게 됐어요.
회사에서 주는 장기 휴가로 발리의 우붓이라는 지역에 갔는데, 그곳이 요가의 성지 같은 곳이었거든요.
요가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상태로 우연히 숙소 근처에서 열리는 아침 요가 강습에 참석하게 됐어요.
그런데 그날 우연히 경험한 숲속의 요가가 너무 좋았던 거예요.
야외 샬라여서 바람, 습도, 그리고 소리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죠."

작은 야외 살라에서의 요가 경험은 예상치 않게 소영 씨의 삶을 차츰차츰 바꿔 나갔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꾸준히 요가 수련을 이어 나가던 소영 씨는 어느 날 문득 사람들에게 요가를 가르쳐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구에 무해하고, 또 타인을 도와줄 수 있는 일.
그간 디자이너로서 고민해 왔던 윤리적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요가 지도자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된 소영 씨는 거주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시작했다.

“서울 생활에 지쳐서 어디론가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제주도에 살았어요.
그런데 제주도에서는 포레스트 요가를 수련하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선생님들이 다들 육지에 계시거든요.
수련을 계속하려면 육지로 가야 할 것 같긴 한데 서울로는 정말 다시 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 바쁘고 경쟁적인 삶이 싫어서 다른 일을 선택한 거니까요.
그러다가 친한 친구가 살고 있는 정선이 눈에 들어왔어요.
우연히 이곳에 오게 된 건데 감사하게도 정선에 저를 필요로 하는 분들이 많아 즐겁게 일을 하고 있죠.”

요가가 소영 씨의 삶에 가져온 변화는 직업, 거주지뿐만이 아니다.
일상에 여백과 부드러움이 생겼다는 점이 사실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이다.
밤낮없이 일하던 삶은 이제 없다. 수업으로 시간을 꽉 채우기보다 스스로를 보살필 시간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처음 배웠을 때부터 느낌이 달랐어요. 다른 운동도 많이 해봤는데 요가는 달라요. 일상으로 아주 깊숙이 들어왔죠.
다른 운동은 어딘가로 가서 해야 하다 보니 사실 나가는 게 어려워서 못 하게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근데 요가는 내 눈앞에 항상 매트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조금 귀찮은 날에도 일단 매트 위에 앉아서 숨이라도 쉬어요.
아주 간단한 자세로 시작했다가 점점 빠져들게 되는 거죠.
요가는 개념 자체가 수련에 가깝기도 하고, 매트만 깔려 있으면 어디서도 할 수 있다 보니까 벗어날 수가 없더라고요.😊”

거꾸로 서서 바라본 뒤집힌 세상 속 뒤바뀐 일상

바쁜 도시 서울에서 경쟁적인 삶에 익숙했던 소영 씨는 자신의 몸도 몰아붙이듯이 대하는 것에 익숙했다.
억지로 힘쓰고, 애써서 버티다 보면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재미있게도 요가는 신체의 모든 것을 드러내요.
자신의 성격, 성향 같은 것도요. 저는 항상 스스로를 푸시하는 사람이었더라고요.
뭔가를 늘 열심히 하는데 몰아붙이듯이 하는 거죠. 그런데 포레스트 요가를 하면서는 내려놓는 연습을 하게 됐어요.
힘을 쓴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너무 그 방향으로만 나를 몰아붙이면 불균형이 일어나게 되니까요.”

온몸 가득 힘을 주어 스스로를 밀어내며 버티던 소영 씨의 세상은 요가를 하면서 뒤집혔다.

“저는 희한하게 몸을 뒤집는 역립 자세를 좋아했어요.
머리 서기부터 시작해서 손을 바닥에 대고 서는 핸드스탠드 같은 동작을 좋아하는데요.
사실 우리는 직립보행을 하는 동물이고 항상 중력에 의해서 발이 닿아 있잖아요.
그것을 뒤집었을 때의 쾌감이 있어요. 단 몇 초인데 짜릿하죠."

서민정 트레이너는 코어 근육이 뇌만큼 중요하다고 말한다.

“역립 자세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코어 근육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자세 중 하나인데요.
거꾸로 섰을 때 어깨와 팔만으로는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할 수가 없어요. 그때 코어의 힘이 중요합니다.
이때 말하는 코어는 복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 아래부터 고관절까지 포괄하는 네모 모양의 몸의 중심부를 뜻해요.
내장을 보호하고, 호흡은 물론 사지를 움직이는 컨트롤 역할을 하기 때문에 몸 전체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근육입니다.”

많고 많은 요가의 종류 중에서도 소영 씨가 수련하고 가르치는 것은 ‘포레스트 요가’다.
하나의 자세를 오래 유지하는 정적인 요가이면서도 코어의 근육이 많이 관여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특히 통증에 대한 치유의 목적이 크다.

“어느 날은 '브릿지'라는 자세를 하며 가슴으로 호흡하는데 호흡이 너무나 시원하게 제 가슴 속으로 들어오면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내가 힘쓰고 애써 스스로를 몰아붙일 때는 느낄 수 없었던 자유로움을 그 순간 온몸으로 느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왠지 부끄럽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한, 다양한 감정들이 오갔어요.”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습관처럼 살아간다. 하지만 몸도, 생각도 그저 습관처럼 움직이다 보면 자신이 어떤 상태로 살아가는지 알아차리기 어렵다.
소영 씨는 요가를 만나 비로소 자신의 몸과 마음에 필요했던 공간을 만드는 법을 알게 되었다. 내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는 공간.
요가는 소영 씨에게 도시에서는 쉽사리 내어주지 않던 편안한 숲과 같은 공간을 내주었다. “어느 순간 내가 호흡하지 않고 있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이걸 순간순간 알아차리면 호흡을 할 수 있는 여유를 다시 찾게 돼요. 아 숨을 안 쉬고 있었구나, 한 번 다시 쉬어 볼까?”

거대한 산과 같은 사회의 시선을 벗어나는 힘

“제가 요가 수련하는 모습을 올리는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는데요.
어느 날 어떤 분이 너무 야해서 보기 불편하다는 말을 하시더라고요. 되려 웃으면서 당신이 대체 어떤 생각을 하시냐고 되물었어요.”

소영 씨가 영상과 사진으로 자신이 수련하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은 요가를 통해 더 개선되는 매일을 나누고 이를 통해 스스로 발전하고자 함이다.
하지만 소영 씨가 느끼기에 세상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외부를 향해 더 뻗어 있다.

“많은 사람이 여전히 이런 질문을 하세요. 요가를 하면 몸매가 예뻐지나요? 이뿐만이 아니에요.
저보다 나이가 있으신 한 선생님이 이제 막 요가 강사 경력을 시작하시는 단계에서 아드님한테 물어봤대요.
너라면 어떤 강사에게서 수련받고 싶냐고. 그랬더니 아들이 이렇게 대답하더래요.
‘엄마, 간단해. 젊고 마르고 예쁘면 돼.’ 이런 현실들이 참 안타깝죠.
실제로 그런 시각에 맞춰서 마른 몸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게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는 상태에서는 시선이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가 있는 상태인 거죠.”

과학기술학자인 임소연 박사는 요가하는 여성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의 몸이 처한 상황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사회에서 여성의 몸을 바라볼 때는 실제로 그 몸을 움직이고 있는 여성이 아니라 그 몸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주인인 것처럼 생각해요.
또한 개개인의 여성들 입장에서도 요가라는 운동이 사회에서 바라는 여성성을 가진 몸을 만들어 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진입하게 되는데요.
사실상 사회에서 기대하는 여성성에 완벽히 부합하는 몸이란 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여성들은 운동하는 내내 사회에서 기대하는 시선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러한 전형적인 시선에 맞설 수 있는 힘도 결국 운동을 하면서 얻을 수 있어요.
여성 스스로 움직이고 호흡하는 몸을 직접 대면하고, 스스로 느끼는 모든 순간이 쌓여서 사회의 거대한 시선을 버텨내고, 결국엔 넘어서는 힘을 가질 수 있게 돼요.”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내 안의 재미를 찾을 것. 이것을 깨닫고 소영 씨의 삶은 크게 변화했다.
그 변화를 소영 씨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내년엔 또 얼마나 즐거울까? 생각만 해도 행복하죠. 매년 즐거움이 갱신되고 있어요.
남들의 시선이 뭐가 중요할까요? 보여 주는 것보다 내가 즐거운 게 중요하죠.
저는 요가할 때도 재밌었지만 농구, 풋살, 클라이밍 할 때도 재밌었어요.
누군가에게 보여주거나 내 몸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 운동이 정말 재밌어서 하는 거예요.
그 재미에 정말 심취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시선도 타인보다는 나 자신을 향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세상에는 정말 다채롭고 다양한 재미가 있거든요. 나를 말려가는 타인의 시선, 사회의 시선에서 벗어나길 바라요.
어떤 운동을 해야 할지 막막하신 분들이 있다면 희소식을 알려 드릴게요. 세상에는 수백, 수천 가지 운동이 있어서 반드시 하나쯤은 나에게 맞는 운동을 찾을 수 있다고 장담해요. 그러니 호기심을 가지고 더 찾아보시고, 삶에서 더 다채로운 재미를 즐기시길 바라요.”